지난 11월 4일(금).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예술인들의 시국선언이 있었다. 시국선언 이후 예술인들은 그림을 통해 청와대에 무덤을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얼굴을 희화하 한 예술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광화문광장에 캠핑촌을 치겠다는 퍼포먼스가 경찰들에게 제지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광화문에서는 1일 킴팽촌 입주 신청이라는 이벤트(?)가 진행중이다. 


11월 8일. 문화예술인의 시국선언과 별도로 음악인들이 뭉쳐 민주공화국 부활을 위한 시국선언을 진행했다. 싱어송라이터 손병휘씨가 사회를 맡았다. 음악인들의 시국선언 기자회견은 뭔가 달랐다. 보통 기자회견처럼 시국선언을 시작하겠습니다! 라는 멘트는 생략됐다. 바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짧은 노래. 집회 현장에서 자주 들을 수 있었던 노래. 윤민석 님의 '헌법 제 1 조'라는 노래를 레게, 스윙, 락앤롤 버젼을 다르게 부르면서 시국선언을 시작한 것이다. 


음악인 시국선언을 시작하는 음악인들의 모습을 53초로 영상으로 편집했다. 






시국선언을 리허설하는 단체는 아마도 음악인들 뿐이었을 것이다. 



현장으로 향하다가 신호대기 중 만난 모던가야그머 정민아씨는 오전 9시부터 칼바람 속에서 시린 손을 달래며 힘들게 리허설을 했다고 전했다.  오전 10시 30분 경 광화문에 모인 20여 명의 음악인들은 故 김광석의 나의 노래를  돌아가며 불렀다. 리허설 중에도 흥이 있었다. 무대에서 흥을 뿜어야 할 음악인들을 광화문 광장으로 모이게 한 것은 비단 블랙리스트 명단 뿐만 아니라, 지금 분노한 민심과 결이 같은 것이다.   





시국선언 발언과 함께 음악인들답게 노래 공연이 있었다.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돈만 아는 순실이, 돈만 아는 저질' 이라는 가사로 현 사태를 조롱조로 비난했다.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퍼포먼스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소 민망할 수도 있다. 나 또한 카페 씨클라우드에서 짜파게티를 끓이며 노래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이거 뭔가요?' 라고 혼잣말을 한 적도 있다. 행위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사람들의 시선이다. 이단옆차기를 하고 사타구니를 타고 내려가는 손으로 저질을 표현하는 그의 퍼포먼스를 사회자 손병휘씨는 명쾌하게 한 마디로 정리했다. 


"이것이 굿 아니겠습니까?" 


 


   

올해 초 평화로 소녀상 앞에서 입김을 불어가며 언 손을 녹이며 가야금을 연주한 음악인. 모던 가야그머 정민아씨는 정치, 사회에 관심이 없이 그냥 지나가던 사람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 이후 벌어지는 세상사에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 될 수는 없었기에 만든 노래를 현장에서 불렀다. 스스로 반성하는 의미로 만든 노래 '지나가는 사람'을 부를 때 뒤에 서있던 뮤지션 말로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렇게 예술인들의 영혼은 자유롭기도 하지만, 사람사는 세상에 일어나는 비상식적인 일상에 분노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음악인 시국선언과 관련된 기사는 기타 매체에서 많이 다뤘으니 필력 좋은 기자들의 기사를 참조하는 게 좋을 듯 싶다. 



현장에서  동영상을 기록하다가 순간적으로 카메라를 사진촬영모드로 전환해서 찍은 사진이다. 싱어송라이터 손병휘씨와 노래패 우리나라의 이광석씨. 어느 초등학교에서 광화문에 현장학습을 나온 것 같았다. 두 사람 뒤에는 비닐이 쳐진 1인용 텐트가 줄지어 있었다. 이 두 사람의 모습이 이유없이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어 본능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싱어송라이터 손병휘씨를 처음 알게 된 장소는 세월호 참사 100일 도보 행진으로 기억한다. 서울역 앞에서 '우리 승리하리라~' 라는 가사가 담긴 노래를 단상 위에서 부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깨엔 기타를, 머리엔 두건을 두른 모습이 꽤나 강렬하게 기억된다.  다큐멘터리 '노래로 말하는 사람들' 제작 당시 국민TV로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하고도 편집에서 넣질 못해 마음 속에 빚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싱어송라이터 이광석씨는 3년 째 형 아우하는 사이가 됐다.  국정원 게이트를 비판하는 뮤지션들의 버스킹. KGB버스킹 촬영 때 인사를 나눈 후 인연이 계속되었다. 사회적으로 비판할 문제가 생기면 어김없이 그는 뮤지션 동료들과 함께 노래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세월호 참사가 있은 후에도 광화문 광장에서 유가족들과 함께 아픔을 나누고 노래로 치유하고자 노력한 사람이었다. 


작곡가 원일씨는 현장에서 처음 알게 된 분이다. 경종을 준비해서 세 번을 울렸다.그리고 발언을 이어갔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자는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는 일침으로 발언을 시작한 음악인 원일씨는 문제있는 권력의 구조를 비판하고 개선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예술가들이며, 그렇기에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시민들이 함께 행동할 것을 권유했다. 분노한 민심의 변화가 바로 희망이기에 함께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국선언의 마지막은 <나의 노래> 떼창이었다.  '나의 노래는 나의 힘 나의 삶' 이라는 가사처럼 음악인들이 노래로 말하고 표현함에 있어 블랙리스트라는 딱지를 붙여 분류한다는 것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며 거꾸로 세상을 돌리는 일인가 말이다. 시국선언 연명 하루 만에 1,000여 명이 서명을 했고, 기자회견 전까지 최단기간 역대 최대의 인원인 2,300여 명이 집단적으로 시국선언을 하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지금 예술인들은 뿔이 단단히 났다. 백기완 선생님은 지난 11월 4일 시국선언에서 윤동주 시인의 마지막 잎새의 싯구를 인용하셨다. 마지막 잎새에 이는 바람이 큰 혁명과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차가운 날씨속에서도 캠핑을 하는 예술인들이 거대한 혁명의 바람을 일으키기 전에 블랙리스트 문건을 작성한 주체의 진심어린 사과와 더불어 문화예술인들의 검열과 탄압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음악인 시국선언을 진행한 음악인 손병휘씨는 시국선언이 끝나고 광화문 캠핑촌에 일일 입주를 했다. 문화예술인 캠핑촌이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런지는 모르겠지만, 블랙리스트 문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처리가 명확히 해결되지 않는 한 예술가들의 뿔은 더욱 거세질 듯 싶다. 붓과 기타로 권력의 심장에 매스를 대는 의술을 가진 예술인들. 그들을 더 이상 분노하지 않게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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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생각하는 꼴찌'라는 아이디로 블로그 꼴찌닷컴을 운영중입니다. 블로그 이름을 꼴찌닷컴으로 정한 이유는 제가 고등학생 시절에 꼴찌였던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학창시절 공부를 안했을 뿐이지, 제가 좋아하는 일에는 게으르지 않습니다.^^ 


지금도 글쓰고 사진찍는 걸 좋아해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꼴찌닷컴은 부족하지만 제 생각이 담긴, 저만의 시선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저장하는 놀이터이기도 합니다. 


블로그 꼴찌닷컴은 '세상에 꼴찌는 없다' 는 생각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세상이야기를 저장하고 기록하는 곳입니다.

많은 관심과 구독 바랍니다. 오늘도 고맙습니다.  


문의 : kkolzzi74@gmail.com  





오늘은 현장스케치 영상입니다. 짧은 영상부터 감상하시죠. 


열세 살 소녀의 울림있는 자유발언과 일본인 노교수의 사죄. 



유투브 : https://youtu.be/JBY_-9L09Ug 






10월 19일 오후 12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집회가 있던 날입니다. 

1253회차 정기수요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소녀상 주변에 둘러앉았습니다.




이날은 90세의 김복동 할머니와 89세의 길원옥 할머니 두 분께서 자리를 함께 하셨습니다. 



이날은 초,중,고 청소년들이 많이 참석한 날이었습니다. 어느 고등학교는 현장학습을 수요집회 현장으로 삼고, 현장에서 느낀 점 등을 메모하는 학생도 보였습니다. 현장에서 보고 느낀 체험이야말로 오래 기억되는 역사공부겠지요. 



현장에서 보고 느낀 청소년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 아픈 역사를 제대로 기억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열세 살 소녀의 울림있는 발언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준 사람은 일본인 노교수였습니다. 





일본의 식민지 통치부터 잘못했고 사죄한다는 인사로 시작한 노교수는 일본국민 중에서는 위안부에 대한 사죄는 이미 했다는 일본 정부의 태도와 생각이 같은 국민들이 많다며 안타까워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도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이 있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젊은 시절부터 사죄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늦게 찾아와서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며 할머니들께 고개숙여 사과하는 모습이 뭉클했습니다.  



현장에서 어느 고등학생이 든 푯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울수록 번지리라" 



꼴찌가 수요집회 현장에서 기록한 영상으로 제작한 단편 다큐멘터리 <소녀상의 그림자가 된 사람들>이 유투브와 비메오 채널에 업로드 되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기록입니다. 


유투브 : https://youtu.be/-yaUACNeF0s 

비메오 : https://vimeo.com/172383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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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16일 오전 10시. 안양천변에서 제 9 회 전국외발자전거대회가 열렸습니다. 두발 자전거를 타기도 쉽지 않을 것 같은 유치원생, 초등학생 저학년들이 외발자전거 안장에 앉아 페달을 밟는 모습이 무척 귀엽고 대견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대회 행사전 서울어린이 외발자전거 시범단이 경쾌한 음악에 맞춰 외발자전거 시범을 선보였습니다.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확인하시죠. 




서울어린이 외발자전거 시범단 풀영상 감상하실 분들은 https://youtu.be/GdR37k5YfRE


마치 서커스 곡예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일렬로 가로 지어 선보인 외발로 바퀴를 구르는 시범은 묘기와도 같았고, 현장에서 관람객들의 큰 호응과 박수를 얻었습니다. 어린이시범단의 외발자전거 시범 후에는 세계 외발자전거 선수권대회에서 챔피온 자리에 오른 박윤성 군의 시범이 있었습니다.





세계챔피온답게 외발자전거를 타며 선보이는 시범이 곡예와 같았습니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함성. 

마지막 외발자전거 회전 묘기는 정말 압권이더군요. 


박윤성 군의 외발자전거 시범 풀영상은 https://youtu.be/_pXpehEnMxo 



어린 학생들이 외발자전거에서 중심을 잡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까요? 오랜 연습과 노력,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도전 정신. 온몸의 중심을 하체에 싣는 집중력 등. 외발자전거를 배우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경험하는 부분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간중간 넘어지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울지도 않고 신통방통 하더군요. 


대회 규칙이 엄격한 것인지, 넘어지면 그 자리에서 경기장 밖으로 나가게 되어있더군요. 넘어지더라도 다시 자전거에 앉아 완주하게 했으면 좋을텐데 말이죠. 결과적으로 1등만 선출하는 방식이 아쉽기는 했습니다. 


외발자전거는 속도보다 중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고,

매일 불안한 꼴찌닷컴도 중심을 잃지 않고 완주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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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10일. 싱어송라이터 사이님의 제안으로 홍대에서 활동하는 인디뮤지션이 중심이 돼서 '세월호를 지켜보는 작은 음악가들의 선언'이라는 제목으로 길거리 버스킹 공연이 있었습니다. 











노래패 우리나라는 안산문화광장에서 공연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다른 때보다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2년 전, 오늘 촬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습니다. 단원고 2학년 故 김동혁 군의 어머님이 동혁군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던 모습입니다. 현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눈물을 흘렸고, 촬영하는 취재진들 무리에서도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습니다. 


5분 30초 영상으로 편집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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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6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글에 이어서 계속 



cut 27. 



사진 / 세월호 침몰 100일 추모국민행진 2016.07.24


유가족과 시민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행진했다. 

침몰 100일이 지나도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로 느껴졌다. 


cut 28. 



시민들과 함께 행진하는 정치인들도 보였다. 



cut 29. 



종교인도 함께 했고, 

행진을 함께 못하는 시민들은 응원으로 함께 했다. 


cut 30.


사진 / 세월호 침몰 100일 추모국민행진 2016.07.24



cut 31.




서울역에 다다랐을 때에는 근처에서 3보 1배를 하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cut 32. 




시청광장에 모인 시민들. 안산에서 출발한 유가족들이 도착하는 순간 눈물과 박수로 함께 했다. 




cut 33.




노래로 위로하는 뮤지션도 있다. 



cut 34. 




언제부터인가 광장에 사람이 모이면 경찰은 길을 막는 게 우선이 되었다. 물론, 행여 일어날 수 있을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목적이겠지만, 시민들에게 보호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지하철로 귀가하려는 시민을 다른 길로 돌아가게 막는 것을 어떻게 보호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cut 35. 




2014년 8월. 

여전히 진상규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단식을 거행했다. 



cut 36. 



시민들은 광화문으로 나와 동조단식을 했다. 





cut 37. 



예술가들은 그들이 가진 재능으로 유민아빠 김영오씨를 응원했다. 



cut 38 


길을 건너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콘서트가 준비중이었다. 

광화문이라는 공간이 가진 다름과 공존을 엿볼 수 있었다. 




잊지 않겠습니다... 


라고 외쳤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세월호 사건은 잊혀져가고 있었다. 


나 또한. 




cut 39. 



사진/ 2015.02 너를 기다리는 콘서트 中 뮤지션 백자 _ 광화문 광장 




2015년 2월... 

너를 기다리는 콘서트 


 

잊지 않겠다고, 

미수습된 아이들을 기다리겠다고 


노래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cut 40. 


사진/ 2015.02 너를 기다리는 콘서트 中 뮤지션 백자 _ 광화문 광장 



안녕, 미안해 라는 추모곡을 만들고 부른 라야밴드. 



cut 41. 




노래로 말하고, 

노래로 기획하는 

싱어송라이터 이광석. 


너를 기다리는 콘서트를 기획한 사람이다. 

그는 세상의 이야기를 노래로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cut 42. 





세월호 침몰 이후, '잊지말라 0416' 이라는 슬로건으로 매주 일요일 오후 4시 16분에 홍대역 8번 출구앞에서 공연을 하는 뮤지션들이 있었다. 



cut 43. 



사진/ 잊지말라 0416 버스킹 중인 밴드 재수좋은 날 _ 홍대입구 8번출구 2015.03.08



바쁜 시민들은 무관심하게 스쳤지만,

잊지말자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울림은 받았을 것이다. 




cut 44. 




노래의 울림은 세월호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서명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cut 45. 


2015년 4월 16일. 

시청광장에 '잊지 않겠습니다' 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cut 46. 




1년이 지나도 세월호는 그대로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었고, 

진실규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cut 47.



사진/ 세월호 침몰 1주기 약속의 밤 _ 시청광장 2015.04.16 



유가족들은 삭발까지 했다.  

지난 1년 동안 많은 국민들에게 위로를 받기도 했지만, 

오해와 색안경 낀 시선의 사람들의 말 때문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받았다. 





cut 48. 





이틀 뒤, 2015년 4월 18일. 


경찰은 세월호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라는 시민들의 집회를 불법시위로 간주하고 물대포를 난사했다. 



cut 49. 





TV뉴스가 아닌 현장에서 물대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건 처음이었다. 물대포에 섞인 최루액 때문에 길바닥엔 하얀 거품이 흥건했고, 체루액에 맞은 시민들은 고통을 호소했다. 시민들이 물로 씻겨 주기도 했다. 



cut 50. 




청와대로 향하겠다는 시위자들은 광화문 북단 광장에서 경찰차벽에 막혔다. 


현장에서 혼란스러웠다. 평화적으로 행진하던 시민들을 차벽으로 가로 막은 경찰의 공권력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차벽을 뚫겠다고 경찰 버스를 흔드는 사람들도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cut 51. 






2016년 2월 24일. 


경찰 차벽에 막혀 거리에서 날을 샌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있던 그 자리에 투명한 스크린이 설치 됐다. 국제엠네스티의 주최로 우리나라에서도 처음으로 홀로그램 시위가 진행됐다. 집회는 인권이다!라는 슬로건으로 여러 시민단체와 시민들이 참여해 영상으로 집회시위를 보장하라는 시위를 진행했다. 





cut 52. 


 




2016. 4월 9일. 

그 자리에서 세월호 2주기 추모 약속 콘서트가 열렸다. 투표를 4일 앞두고 있었다. 

세월호 침몰로 희생된 아이들이 살아 돌아왔다면, 아이들은 생애 첫 국회의원을 선택할 수 있었다. 




cut 53. 



BY 김은영 


 

페이스북에서는 친구들 세 명을 태그해서 세월호 사건을 잊지말자는 캠페인이 진행중이다. 꼴찌닷컴에서도 잊지말자는 의미의 캠페인을 나름대로 진행하고자 한다. 캠페인이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또 서서히 잊을 것이다. 무서운 것은 그날의 사고는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기억해야 한다. 


REMEMBER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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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t 1.



 사진 / 세월호 2주기 약속콘서트 @광화문광장 2016.04.09


2016년 4월 9일.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 세월호 2주기 약속콘서트가 열렸다. 2,000 ~ 3,000여 명의 시민이 모였다. 인기가수가 등장하면 소리를 지르다가도 이내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을 보았다. 



cut 2. 



 사진 / 세월호 2주기 약속콘서트 @광화문광장 2016.04.09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기억하자고 했다. 잊지 않겠다고 했다. 




cut 3 



 사진 / 다시, 봄 프로젝트 공연 @남산골 한옥마을 2016.04.10



어김없이 다시, 

봄이 찾아왔다. 


2016년 4월 10일. 

남산골 한옥마을에서는 뮤지션들과 국악인들의 세월호 기억 콘서트가 있었다. 





cut 4. 



 사진 / 다시, 봄 프로젝트 공연 @남산골 한옥마을 2016.04.10






저마다의 방식으로 우리는 세월호를 기억하고 있었고, 

아픔을 함께 하고 있다. 




cut 5. 





2014년 4월 16일... 

뉴스 자막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쉰 것도 잠깐. 




cut 6. 



 사진 / 안산 임시분향소 _ 20140423



믿기 힘든 현실이었다. 



cut 7. 



 사진 / 시청광장 2016.04.30



희망을 버리지 않고 

실종자들의 무사생환을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cut 8. 



 사진 /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추모미사 시청광장 2016.04.30



세월호는 침몰했고, 

각 계에서는 원인을 밝히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도 침몰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cut 9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cut 10. 




......



cut 11. 



 사진 / 마포구청 추모문화제 2016.05.02




곳곳에서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cut 12. 





시민들은 촛불을 들었다. 



cut 13



 사진 / 침묵행진 2016.05.03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cut 14. 



  사진 / 침묵행진 2016.05.03


청춘들은 침묵으로 행진했다. 





cut 15. 



 사진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은 음악가들의 선언 _ 백자 _2016.05.10



노래로 말하는 사람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했다. 





cut 16 



사진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은 음악가들의 선언 _ 사이 _2016.05.10



젊은 청춘들이 거리로 나서는데,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cut 17.  





노래로 말하고, 

침묵으로 행동했다. 



cut 18 



 사진 / 촛불문화제 안산문화광장 2016.05.10



자식을 가슴에 묻고 맞이한 어버이날. 





cut 19 




유가족과 시민들은 오열했다. 



cut 20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밝혀지는 것은 제대로 없었다. 



cut 21. 



사진 / 전국도보순례단 출정식 2016.06.26





cut 22. 



사진 / 전국도보순례단 출정식 2016.06.26




cut 23 



사진 / 세월호 침몰 100일 추모국민행진 2016.07.24



100일이 지났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민행진. 안산에서 시청광장까지 1박 2일의 도보 행진 




cut 24. 




세월호 진실을 밝히는 특별법 제정의 통과도 쉽지 않았다. 



cut 25.






cut 26. 




힘겹게 싸우는 유가족들은 혼자가 아니어야 했다. 



<계속>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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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_#8]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신 싱어송라이터 이광석의 노래 



"제가 공연을 많이 다니는데요. 할머니들 앞에 서니까 많이 떨리네요..."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뭘까 생각해봤는데요..."


싱어송라이터 이광석씨와 함께 <고향의 봄> 을 부르며 눈시울을 적신 사람들. 길원옥 할머니도 함께 노래하시는 모습이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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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 다섯 번 째 글] 


영화 <귀향>이 일주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영화의 완성도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사람도 있고, 1,000만 관객 돌파해야 할 영화라며 여전히 단체관람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12월 30일 제 1211회 수요집회 현장에 촬영 차 나갔다가, 집회 후 소녀상 곁을 지키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후로 관심을 가지고 시간이 날 때 현장에서 기록을 했습니다. 그 동안의 기록을 다양한 관점에서 #53으로 정리하고자 합니다.  



소녀상 곁을 지킨 사람들이 만든 나비효과  






#1. 아홉 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추모집회 _2016.12.30 



12월 28일.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발표된 일본군 '위안부' 한일합의. 뉴스 헤드라인 속보 자막을 접한 순간 스친 짧은 생각은...  


한 해 마무리하면서 '큰 일 했구나' 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관한 문제는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한.일 관계의 풀리지 않는 매듭이었던가... 


그런데, 바로 다음날(29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분노가 담긴 영상이 SNS상에서 공유되었고, 평화로 일본군 대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 제 1211회 차 수요집회 현장 사진 ⓒ꼴찌닷컴


12월 30일. 1,000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수요집회에 참석했다. 피해자의 요구가 배제된 졸속 합의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또한, 소녀상 철거를 조건으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합의라는 내용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 제 1211회 차 수요집회 현장 사진 ⓒ꼴찌닷컴


예술단체에서도 함께 했다. 극단 고래 관계자는 '가해자의 법적 책임은 찾아 볼 수 없고, 모호하고 진정성 없는 사과' 라는 내용이 담긴 성명서를 낭독했다.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준비한 피해자 할머니들의 사진을 들고 있었다. 2016년 2월, 두 분의 피해자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시면서, 생존해 계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현재 마흔 네 분이다.  






1,000여 명 정도로 추정되는 시민들은 집회가 끝난 후, 2015년 세상을 떠나신 아홉 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추모했고, 그 모습을 담으려는 취재진들의 경쟁도 대단했다. 




현장에서 사진과 영상을 기록하면서 느낀 점은 예전과 달리 기자나 취재진이 설 자리가 많이 없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자! 나오세요!" "기자님들 비켜주세요!"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 

"한겨레니까 내가 인터뷰 하는 거야..."

 



현장에서 흘려 들은 이야기들이다. 언론에 대한 신뢰가 예전같지 않다는 현장의 소리라고 느껴졌다.    



집회가 끝난 후, 헌화와 추모를 마친 시민들이 평화로를 떠나는 사이, 한 무리의 대학생들이 소녀상 곁에 똬리를 틀고 앉았다. 


#2에서 <계속> 





꼴찌의 53초 현장스케치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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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블로그 꼴찌닷컴의 생각하는 꼴찌입니다. 


지난 1월 14일, 여성 단체의 기자회견 및 용인의 엄마 단체의 후원으로 '밥통' 이라는 업체에서 소녀상 곁을 지키는 대학생들에게 저녁식사를 제공하는 현장의 모습을 발행한 바 있는데요. 



지난글에 이어 53cut 현장스케치 계속됩니다.



오늘의 현장스케치는 

평화의 소녀상 곁에서 예술로 행동하는 사람들에 관한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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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3일, 제 1213회 수요집회가 끝난 후 소녀상 곁에서 예술인들의 퍼포먼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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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아리랑이라는 제목의 퍼포먼스였다. 어떤 형식이나 틀에 걸림 없이 '바람 따라' 춤을 추면서 넋을 달래는 의미의 넋전춤이라고 한다. 이 퍼포먼스를 연출한 혜인스님은 위안부 집회뿐만 아니라 세월호 희생자를 위로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한 예술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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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를 들고 열창하는 이 남자는 래퍼 SV 다. 

미소년을 닮은 듯한 외모와는 달리 '인식 부재의 시대' 'Wake up' 등 그가 부르는 노래 속에는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 있다. 


그의 노래를 짧게 들어보자.





그를 처음 만난 장소는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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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희생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광화문 추모 버스킹 현장이었다. 다큐멘터리 <노래로 말하는 사람들> 촬영 당시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제가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서 영향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불특정 다수에게 음악을 발표해서 누군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그런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그는 노래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사람들에게 생각의 계기를 줄 수 있는 노래를 하고 싶다고 했다. SV는 노래로 세상의 이야기를 담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이처럼 소녀상 곁에는 노래로 말하는 많은 예술인들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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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요? 여기서 친해지지 말자고 제발 부탁했는데, 점점 친해져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대학생들이) 여기 계속 올 필요도 없고, 여기 와야 할 이유도 없는데... 빨리 타결돼서 따뜻한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고, 고맙다는 마음과 미안하다는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안양에서 왔단는 가수 장민준씨다. 소녀상 곁을 지키는 대학생들이 하루빨리 집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졌다. 그는 현재 서로에게 위안을 주자는 의미로 노래를 하나 만들고 있다고 전하며 첫 곡으로 '광야에서'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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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에 아랑곳 않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몸을 움직이는 대학생들을 보면서 예술의 힘이란, 노래의 힘이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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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찾는 사람들'로 활동했던 가수 김가영씨는 현재 '노래하는 나들' 이라는 혼성 듀오로 활동 중이다. 바로 전 날 진행된 세월호 생존 학생들의 졸업식에 관한 이야기도 전하며 진실을 밝히는데 많은 사람들이 힘써야 하며, 소녀상을 지키는 대학생들을 노래로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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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수요집회에서도 노래로 참여한 가수 하이미스터메모리는 대학생들에게 멋지다는 말과 자신이 부끄럽다는 인사말로 노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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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미스터메모리의 노래 중 '꽃순이'라는 곡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만든 자작곡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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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을 낀 채로 촬영했는데도 손이 시려 촬영이 쉽지 않았는데, 맨손으로 기타줄을 튕겨야 하는 가수들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피해자의 의견이 수렴되지 않은 12.28 한일 합의에 대한 반대의 뜻을 노래로 말하고, 소녀상 곁을 지키는 대학생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겠다는 마음의 힘이 추위를 견딜 수 있게 한 것일 테다. 



노래로, 예술로 소녀상 곁을 함께하는 행동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그 봉화를 지핀 사람은 노래패 우리나라의 멤버이자 싱어송라이터 이광석 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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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12.28 합의가 있던 다음날, '효녀연합' 으로 미디어에 소개된 청년예술가 네트워크 홍승희 씨와 더불어 많은 예술인들이 정기 수요집회가 끝난 후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소녀상 곁을 지키는 대학생들을 격려하면서 노래로, 퍼포먼스로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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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이광석 씨를 처음 만난 곳도 광화문이었다. 싱어송라이터 이광석씨는 K.G.B 국정원 게이트 버스킹,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 버스킹 '기다릴게' '너를 기다리는 콘서트' 밀크뮤직 서비스에 항의하는 '음악이 공짜가 아니라고 말하라!' 버스킹 등 상식적이지 못하고 비합리적인 사회현상에 대한 비판을 노래로 말하는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다. 그가 작사, 작곡한 '다시 광화문에서'라는 노래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며 시위 현장에서 불려지고 있다.




음악 다큐멘터리 <노래로 말하는 사람들>에서 그가 한 인터뷰 내용 중 인상 깊은 대목이 있다. 


"차마 볼 수 없는 부조리한 현상에 대해 행동을 해야겠다는 것이 첫 마음이고, 어떻게 행동할 것이냐? 나는 노래하는 사람이니까 노래를 할 것이다"


싱어송라이터 이광석씨는 노래 안에 희.로.애.락이 담겨있다고 했다. 노래를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노래로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진출처 : 이광석씨 페이스북        


노래로 말하는 사람들이 오늘 20일. 평화의 소녀상 곁에 대거 모인다. 영하의 날씨에도 소녀상 곁을 지킨 대학생들에게는 물론, 많은 시민들에게 울림이 될 것 같다. 혹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 현장을 스케치하고자 꼴찌도 그곳에 있을 것이다. 




사진/글  생각하는 꼴찌 ( e-mail : kkolzzi74@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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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블로그 꼴찌닷컴의 생각하는 꼴찌입니다. 


지난 2015년 12월 30일, 일본군 '위안부' 정기 수요집회 현장을 스케치하러 갔다가, 집회 후에도 소녀상 곁을 지키는 대학생들이 인상 깊어 기록을 하게 됐습니다. 24시간 밤샘 농성을 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스쳤습니다. 쉽게 정리하기 힘든 미묘한 감정들이 현장 기록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대학생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소녀상 지킴이로 나섰습니다. 

평화의 소녀상 지킴이로 나선 시민들, 그 첫 번째 엄마들의 밥차 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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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3일. 

대학생들의 24시간 농성 15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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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2시 30분 경.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 일본군 '위안부' '합의'는 무효다! 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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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 과정과 의미, '합의' 규탄 발언 및 자유발언을 한 여성단체 회원들은 '합의 못 한다고 전해라~' 라는 개사로 퍼포먼스를 펼쳤다. 기자회견을 마친 여성단체는 규탄발언 및 퍼포먼스를 진행하기 위해 외교부로 이동했다. 



수요집회가 끝나고 소녀상 곁에는 여전히 대학생들이 자리를 지켰다. 이날 오후 2시 부터 5시 까지 싱어송라이터 이광석씨를 비롯해 랩퍼SV, 하이미스터메모리, 노래하는 나들의 김가영, 싱어송라이터 장민준씨의 예술행동이 이어졌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포스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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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 40분 경. 

현장에 트럭이 한 대 도착했다.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밥차인데, 이날은 용인의 어머니단체의 후원을 받아 평화의 소녀상 곁을 지키는 대학생들과 촛불문화제에 참석하는 시민들에게 저녁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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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늦게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체감온도는 더 떨어졌다. 소녀상을 찾은 자원봉사자들은 테이블과 준비해 온 음식들을 일사분란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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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가 지기 시작하자 밥차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학생들 밥먹고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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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가 되자, 

트럭에서 뜨거운 국물과 노오란 계란말이를 배식하고, 

옆에 놓여진 테이블에서는 반찬을 배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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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엔 훈훈한 풍경이었다. 

하지만,누군가는 집 놔두고 거리에서 뭐하는 거냐며 비아냥 거리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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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생들에게는 한 끼 저녁식사가 의미있는 것이 아니라,

소녀상 곁을 지키는 대학생들 곁에 시민이 있다는 것이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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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학생들이 30대가 되면 세상은 조금 더 훈훈해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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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불편한 자리지만, 친구들과 함께하는 식사

조금 부족한 밥이지만, 시민들이 함께하는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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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식은 밀크티^^ 


저녁식사가 끝난 후 7시부터 시작된 촛불문화제에서는 용인에서 아이 셋을 키운다는 한 어머님의 발언이 있었다. 



"지난 연말에 학생들이 소녀상을 지킨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 마음으로 해주고 싶은 게 밥이었어요. 그래서, 동네 엄마들에게 얘기했더니 정말 뜨거운 호응을 보내주셔서 1차에 이어 두 번째 밥차와 오게 됐어요. 우리 모두 함께 연대해서 나라의 자존심을 지키고 소녀상을 지켜내는 일이라 생각해요. 어른을 대신해서 차가운 도로에서 고생하는 학생들에게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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