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스님이 된 막내 아들의 사모곡

꼴찌닷컴 Ver.1(2010.01~2012.06) 2012/05/16 09:54 Posted by 꼴찌닷컴 생각하는 꼴찌

 

 

안녕하세요. 블로그 꼴찌닷컴의 생각하는 꼴찌입니다.

 

1993년 출가한 스님이 있습니다. 5남매 중 막내아들이었던 그 스님은 어머님의 사랑을 뿌리치고 뜻한 바가 있어 절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50일 전 그 어머니는 끝내 막내아들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제(2012.05.15)는 그 어머니의 49재가 있던 날,

스님이 된 막내아들은 어머니를 보내며 염불을 외웠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평소보다 이른 아침 식사를 마치고 길을 나섰다. 아버지를 모시고 두 시간 반 남짓 운전 끝에 도착한 곳은 강원도 강릉의 작은 마을. 

 

마을 입구에서 먼 산등성이에 바람을 타고 있는 대형 바람개비를 봤다. 

그 바람은 내 이마에 맺힌 땀방울도 식혔다. 

 

 

 

 

 

지난 3월 돌아가신 고모 할머님의 49재가 있는 날이다. 

 

사람이 죽은 뒤 49일째 제사를 지내는 불교 의식은 칠칠재(七七齋)라고도 불리며, 이는 불교의 윤회사상에서 생겨난 의식이라고 한다. 돌아가신 후에 이런 의식이 무슨 소용이겠느냐만은 잊히지 않는 유년 시절의 추억, 무엇보다 질곡의 삶을 살다 돌아가신 고모 할머니의 영면을 기원하기 위해 절로 향했다.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사찰이다. 바로 보현사. 

 

이 사찰은 650년 (진덕여왕 4) 자장율사가 처음 세운 사찰로 후에 낭원지사에 의해 다시 지어졌고, 지장선원이라 불렸다고 한다.

     

 

 

 

보현사는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절이었다.

청초록의 풀과 나무가 사찰을 에워싸고 있었다.

 

산새 소리, 풍경소리는

잠시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찌든 스트레스를 날리게 하는 연주소리다.

 

 

고모할머니의 49재를 강원도 산중의 사찰에서 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막내아들이 직접 49재를 치르겠다고 자처했기 때문이다.

 

 

 

 

 

요사채에서 스님 한 분이 나오신다. 어렸을 적 '아제' 라 불렀던 사람이다.

나와 나이가 같지만 고모 할머니의 막내아들이니 내겐 아저씨다.

 

1993년 출가했으니 18년 정도를 가족과 속세와 연을 끊고 산샘이다.

 

법복을 입고 걸어 나오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  

 

 

 

 

  

 

2002년 오대산 월정사 템플스테이에 참석했다가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산에서 좋은 공기와 채식 때문인지 하얗고 뽀얗게 변한 피부가 인상적이었다. 공부하기 싫어했던 양반이 늦은 나이에 동국대 불교학부에 입학해 심리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스님의 법명은 혜행

 

 

 

 

지심귀명례

 

 

오전 9시 30분, 

고모 할머님의 49재가 시작됐다. 

 

 

 

 

 

5남매 중 유난히 고모 할머니를 많이 닮은 막내 아들.

 

치매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도 막내아들을 그리워하셨고 임종의 순간까지도 막내아들 얼굴을 보고 싶어하셨다는 고모 할머니는 끝내 막내아들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지금 혜행스님의 심정은 어떨까?

 

 

 

 

 

보현사 주지 스님의 옆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주지 스님의 염불을 돕고 있었다.

 

중간 중간 혜행스님이 혼자서 염불을 외는 순간도 있었다. 목소리는 감정을 억제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담담했다.

 

 

 

 

 

 

2시간 남짓, 스님이 된 막내아들의 사모곡이 끝났다.  

 

가족사를 다 들추어낼 수가 없어 생략하지만, 질곡의 삶을 살다 가신 고모할머니!

이젠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곳에서 누군가는 세상과 만날 것이며, 또 누군가는 세상과 이별할 것이다.

 

보현사 사찰 옆에 돌고 도는 물레방아 주위를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노닐고 있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오늘 이 글과 사진을 보신 여러분!

지금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