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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14년 4월 27일 / 5월 4일 2부작으로 방송되는 SBS스페셜 '하얀 블랙홀' 제작 과정에서 겪었던 

생각하는 꼴찌의 경험과 제작노트를 기록한 글입니다)


지난글

[꼴찌의 방송제작일지] -  #1 막연한 동경이었던 히말라야를 가다




#2 산악인 최강식은 꼴찌의 등반 멘토가 되었다. 



히말라야 등반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곁에는 사랑하는 후배와 두 명의 전문 산악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운동부족인 저질체력이 그들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는 부담이 출장 내내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히말라야 출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산악인 최강식을 알게 된 것이라 말하겠다. 내게는 은인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출장 전까지 난 등산 스틱도 제대로 잡을 줄 몰랐다. 등산화 끈도 제대로 묶지 못해서 걷다 보면 끈이 풀리기를 반복했다. 항상 뒤처지는 나를 답답해할 만도 한데, 산악인 최강식은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까지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배려를 아는 상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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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월 2일. 해발 5400m의 촐라패스를 건너는 트래킹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새벽 4시에 출발한 하얀블랙홀 원정대는 2시간 30분 동안 암흑 속을 헤치며 등반을 해야 했다. 하늘은 별천지였고, 바람 소리 물소리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뼛속까지 스며들며 나를 겸허하게 했다. 


입에서는 구린내가 날 정도로 혀와 입천장은 말랐고, 두 다리와 허리에 전달되는 통증은 40년 넘게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고통이었다. 촐라패스 정상에 도착했을 때 여명이 밝았고 그 아름다운 풍경과 동시에 그 동안 곁에서 날 배려해 준 최강식에 대한 고마움이 가슴 벅차게 밀려왔다. 자존심도 잊은 채 난 진한 눈물을 흘렸고, 산악인 최강식을 부둥켜 안고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전했다.  








이 글에서 굳이 내가 눈물을 흘린 이유를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얀블랙홀 방송을 통해 9년 전 산악인 최강식이 촐라체에서 겪었을 고통을 체감한다면 내가 닭똥같은 눈물을 흘린 이유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9년 전 불의의 사고를 당했던 촐라체 크레바스 근처를 지나 하산 하는 길. 아마도 산악인 최강식은 선글래스에 가려진 눈망울에 내가 흘린 눈물과는 밀도가 다른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가 산에서 얻은 것이 많다면 잃은 것 또한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산이 그대로 있는 한 항상 산을 찾을 것이라 했다. 






산악인 최강식은 이렇게 말했다. 


" 산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두 발로 걸어야 하는 곳이다. 걷다가 숨도 차봐야 하고, 발바다도 붓고 다리도 아파봐야 하는 곳이다 " 


산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했다. 

산을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힘든 이유는... 

아쉬움 때문일 것이다.  



최강식은 내게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내 친동생보다도 어린 나이인데 출장 내내 형같은 존재였다. 호랑이 상의 상남자임에도 시종일관 웃음을 잃지 않았다. 


하산길 히말라야 남체에 다다를 즈음 그의 뒷모습을 촬영했다. 앞으로 그가 넘어야 할 인생의 산에 항상 여명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며, 뒷모습이 아름다운 산악인으로 오랫동안 산과 함께 하기를 기도한다. 


이 글을 빌어 다시 한 번 산악인 최강식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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